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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개가 날아 봉황이 된 꿈

김천시민의 힐링 장소 연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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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17.09.02 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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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천시 시민의 생활권 내에 최고의 힐링의 장소로 교동 연화지가 있다. 주변에는 칼국수, 보리밥, 백숙을 비롯한 다양한 음식점이 즐비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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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화지는 4계절 모두 연못 주변의 풍경이 볼만하여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지만, 특히 계절이 여름에서 가을로 바뀌는 요즘은 산책을 하며 주변의 분위기를 즐기기 딱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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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가 덥지도 춥지도 않고 간간이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을 맞아가며, 연화지를 온통 덮고 있는 각양각색을 띠고 있는 연꽃의 자태를 감상하며 걷다보면 머릿속 복잡한 생각은 어느새 사라지고 새로운 희망의 기운이 차 있는 걸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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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연화지는 내부 문화재인 봉황대(경상북도 문화재 자료 제15)도 김천시에서 시간을 두고 개방하고 있어 좀 더 가까이에서 연꽃과 연화지 생태를 관찰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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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황대는 사방 3칸의 2층 다락으로 1700(숙종 26) 창건되어 읍취헌(邑翠軒)이라 이름했다. 원래 김산관아 북쪽인 지금의 김천법원 자리에 있었는데 1838(헌종4) 군수 이능연(李能淵)이 지금의 자리인 연화지 중앙으로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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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화지는 1707년부터 1711년까지 김산군수를 지낸 윤택(尹澤)이 솔개가 봉황새로 변해 날아가는 꿈을 꾼 후 연못을 솔개 연()자에 바뀔 화()자를 써서 연화지(鳶嘩池)라 이름 지었고 그 날아간 봉황새의 방향이 읍취헌 쪽인지라 다락이름도 읍취헌에서 봉화대로 고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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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화지는 솔개이고 봉황대는 날아오르는 봉황새를 상징하는 것으로 솔개가 봉황이 되어 날아오르는 윤택군수의 꿈이 실현된 공간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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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 선비 유유계(兪濡溪)는 연화지 경치를 서정적인 아름다운 시로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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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릉 아름다운 땅, 맑은 물결이 일렁이네

물속에 비단비늘이 가득하고, 바람에 수양버들이 나부낀다.

푸른 것은 3만개의 연잎이요, 붉은 것은 열 길의 연꽃이네.

좋은 경치를 감상함은 내 분수가 아니니

떠나는 수레타고 이곳을 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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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년 전의 연못이 변하지 않고 봉황대와 함께 그때 모습을 지키고 있으니, 그 시절 선비가 아니더라도 봉황대에 올라 이 곳 연꽃을 바라보며 스치는 바람을 느끼고 있으면, 시 구절은 아니라도 흥얼거리며 콧소리 절로 날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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