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19(금)

인도 불교성지 순례 답사기 [ 법진 이상호] Ⅱ

3일차 1월9일(화) (바라나시--> 보드가야--> Anand International Hot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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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18.01.23 1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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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3시반에 기상, 4시반 아침공양, 5시반시 보드가야로 이동 버스로 약 6시간 이동

수자타 마을 , 마하보디사원 순례 (보리수, 마하보디 탑, 금강좌, 7선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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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수자타 탑

수자타는 붓다에게 유미죽을 제공하여 빈사상태에 있던 붓다의 기력을 회복하게 하여 깨달음을 얻게 한 여인이다. 그것을 기념하여 만들어진 스투파이며 나이란자라강 옆 수자타 마을안에 있다. 부처님께서 전정각산에서 고행 하신 후 이 강을 건너 보리수 아래로 향하셨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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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전 정각산

저 멀리 보이는 산이 바로 전 정각산으로 부처님께서 6년간 고행하셨다는 산이다. 정각산(현지 사람들은 마하칼라 산 이라 부름)

수자타의 공양을 받아들인 것을 오해하여 수행하던 다섯 도반들 모두 바라나시로 떠나버린 후 싯달타가 깨달음을 얻고자 찾아 왔다는 장소(깨달음을 얻기 전의 산이라 해서 전 정각산이라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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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마하보디 사원

이렇게 하여 마하보디사에 이르렀다. 내가 본래부터 원하는 곳에 왔으니 너무나 기쁘다. 내 어리석은 뜻이나마 대략 엮어서 오언시를 지었다. 1,300여 년 전 어느 날 혜초스님이 어렵고도 힘든 길을 걸어서 몽매에도 그리던 보드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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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dhgaya)에 도착하여, 부처님이 위없는 깨달음(無上正等正覺)’을 얻으신 보리수 아래의 금강보좌 앞에서 벅찬 가슴으로 읊으신 시를 떠올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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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수가 멀다고 걱정 않는데 어찌 녹야원이 멀다 하리오. 다만 멀고 험한 길 근심되지만 업보의 바람 휘몰아침도 두렵지 않네. 여덟 탑은 참으로 보기 어려우니 어지러이 오랜 세월에 다 타 버렸네. 어찌 한 사람의 소원이 이루어질까? 오늘 아침 두 눈으로 똑똑히 보누나.” ( 왕오천축국전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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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마하보디사(大菩提寺)을 순례하는 날 티벳의 지도자 달라이라마께서 대보리수사에 오셨다는 소식을 듣고 참 행운이다 좋은 느낌이라고 생각 했다. 그래도 친견하기는 어렵겠지만 우리가 방문 하는 날 오셨다 감사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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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인지 버스로 가까이 가는 것도 통제가 되어 어떻게 할까 하다가 통제가 풀렸다고 해서 가까이 버스로 갈수 있어 다행이었다. 입구에서부터 너무나 많은 각국의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다, 사원 내에는 맨발로 입장이 가능 한지라 입구에서 신발을 벗어 놓고 맨발로 수많은 외국 스님들과 참배객들의 뒤를 따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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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보리사탑을 보는 순간 입이 떡 벌어지고 가슴이 벅차오른다. 그 당당한 위용과 이슬람의 파괴에도 주민들의 지혜와 노력으로 천년 후 이렇게 모습을 드러냈다니 너무 아름답고 당당한 모습이다. 어떻게 이렇게 아름다운 탑을 만들 수 있었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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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가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으신 곳이구나 생각하니 부처님의 숨결이 느껴지는 듯하다보드가야의 넓은 도량 가운데에 위용도 당당하게 우뚝 서 있는 마하보디사와 수많은 봉헌탑과 보리수와 반얀나무들, 그 사이사이 공터마다 빈틈없이 앉아 법회를 열고 있는 인도, 스리랑카, 티베트, 네팔, 태국, 미얀마 등의 스님들의 진언과 염불과 독경소리를 들으며, 끝도 없는 줄을 따라 드디어 마하보디사의 법당에 들어선다. 높은 연꽃대좌 위에서 황금빛 가사를 걸치시고 항마인(降摩印)을 짓고 계시는 부처님께 법성스님과 함께 따라 같이 간 일행 모두 기도를 올리고 엎드려 삼배를 올린다. 법성스님께서 같이 간 우리들을 위해 축원을 더해 주시려고 애쓰시는 모습이 너무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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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보리수 탑 내 법당의 부처님 상 마하보디사원을 들어가기 위해 줄을 선 모습법성스님과 일행들 기도하는 모습 부처님께서 깨달음을 얻으신후 첫발 불족적법당을 물러나와 스님을 따라 사원의 왼쪽 벽 길을 천천히 걸어 탑돌이를 한다. 사원 뒤편에 우람하게 서 있는 보리수와 불족적 앞 공터에 스님에 따라 기도를 하고 좌정하여 1시간 가까이선정에 드니 위에서 부처님의 생생한 음성이 들리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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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전에 의하면 부처님께서 깨달음을 얻으신 후 한 때, 중생들은 근기가 낮고 탐진치와 사견과 교만에 가득하여 부처님의 법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을 것이라 생각하시어 법의 설하심을 그만두시고 바로 열반에 들고자 하셨다. 그러나 이러한 부처님의 마음을 간파한 제석천왕과 범천왕의 세 번에 걸친 간곡한 설법요청을 받아들여 최초로 다섯 비구에게 깨달은 바를 설하시게 됨으로써, 이 세상에 부처님의 법이 전파되기 시작하였고, 우리들도 오늘 같은 숙생의 인연으로 여기에 이르러 부처님의 모습을 뵙게 되고, 생생한 법음을 듣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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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드가야(Bodhgaya)는 비하르(Bihar)주 가야(Gaya)시의 남쪽 약 11km 지점에 위치한 마을로서, 카필바스투 성을 출가한 고타마 싯달타가 여러 스승들의 가르침에 만족하지 못하고 스스로의 수행을 위해 찾아든 곳으로, 당시 보드가야 반대편 니련선하(尼連禪河) 건너의 고행림(苦行林)에는 약 2만여명의 수행자들이 살고 있었다고 전한다. 고행과 단식이 열반의 길을 향해 나아가는데 오히려 방해가 됨을 알게 된 싯달타는 이러한 방법을 중지하기로 결심하고, 니련선하 강가에서 목욕을 하고 머리를 깎은 채 숲 속에 앉아 선정에 들게 되었고, 우루빌라 성주의 딸 수자타가 주는 유미죽(乳味粥)을 공양 받고 기력을 회복하신후 32상의 수려한 모습을 갖추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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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싯달타의 모습을 지켜본 교진여 등 다섯 동료 수행자들은 실망하고 바라나시의 녹야원으로 떠나버리게 된다. 혼자 남게 된 싯달타는 전정각산(前正覺山)에 올라 열반의 길을 구하고자 하였으나, 산신들은 보드가야의 금강좌(金剛座)에 올라 성도하기를 권하였으며, 이에 보드가야의 금강좌 필발라(Pipal)나무 그늘 아래에 동쪽으로 자리를 정하고, ‘일체지(一切智)를 얻지 못하면 결코 이 자리를 떠나지 않을 것이라는 마음으로 선정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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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음력 127, 욕계(欲界)의 모든 유혹에서 벗어난 싯달타는 또다시 깊은 선정에 들게 되는데, 초선으로부터 4선을 거친 후 천안통(天眼通)과 숙명통(宿命通)을 얻게 되고, 이로써 스스로의 지혜의 눈으로 사성제(四聖諦)와 팔정도(八正道)를 추구하게 되었고, 또한 생사의 고통의 원인인 무명(無明)이 근본이 된 십이인연(十二因緣)을 간파하게 된다. 그리하여 128일 새벽, 샛별을 보는 순간 무명의 소멸과 함께 홀연 깨달음을 얻어 위없는 정각(正覺)을 이루시어 붓다가 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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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보디(Sambodhi) 또는 마하보디라고 불리는 보리사(大菩提寺)는 최초 B.C. 250년경 아쇼카왕에 의해 금강좌(金剛座) 위에 4개의 석주로 지탱된 닫집으로 건립되어 금강좌사원으로 명명되었다가, A.D. 2세기 혹은 5세기경에 이르러 현재의 모습을 갖게 된다. 이후 이슬람족의 침략과 힌두교의 영향으로 땅속에 묻힌 채 오랜 세월 그 모습을 보이지 않다가, 1881년 컨닝햄에 의해 완전히 발굴됨으로써 사방 15m의 정방형 기단 위에 52m의 높이로 세워져 있었던 대사원의 위용이 세상에 빛을 발하게 되었다. 마하보디사의 발굴자인 컨닝햄에 의하면, 원래 금강좌 위에 아쇼카왕이 건립한 사원이 있었고, 이곳 현재의 사원 역시 그곳에 증축된 탓으로 실제 금강좌 자리는 사원 안에 모셔져 있었다고 하며, 사원 담장 밖 보리수 아래에 조성된 현재의 금강좌는 굽타왕조 초기에 만들어진 것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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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의 거듭된 중수로 금강좌 기단부에 새겨졌던 열 가지 형상들과 조각은 해체되고, 좌대의 일부분만이 현재 이곳에 남아있다고 한다. 사원의 동쪽에는 중각(重閣)이 있으며, 사원의 정문 좌우에는 관세음보살님과 미륵보살님의 상이 모셔져 있다. 사원의 벽과 첨탑의 벽면에는 수많은 감실과 그 속에 황금 불상이 자리하고 있으며, 부처님의 일대기인 본생담에 근거한 무수한 조각들의 섬세함과 다양한 모습들이 순례객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고 있다. 사원 법당에 모셔져 있는 항마인 모습의 불상은 13세기경의 작품으로, 현장법사의 대당서역기에 의하면 원래 대좌의 높이 42, 넓이 125, 불상의 높이 115촌에 양 무릎의 거리가 88, 양 어깨의 넓이가 62촌의 대불이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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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하보디사의 서쪽 담장 곁에 자리하고 있는 25m 높이의 보리수는 원래 필팔(Pilpal)나무였으나, 부처님의 깨달음 이후 보리수(菩提樹)로 불리어지게 되었고, 대보리수(大菩提樹:Mahabodhi Tree)라 부르기도 한다. 현재의 이곳 보리수는 원래 있었던 보리수의 손자 격에 해당되는 나무로, B.C. 3세기경 아쇼카왕의 딸 상가미타가 스리랑카의 아누라다푸라에서 보리수의 묘목을 옮겨 심은 것이었는데, 보드가야의 보리수가 이교도들의 박해로 가지가 잘리고 훼손되자 다시 스리랑카에 있던 보리수의 어린 묘목을 가져와 심은 것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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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수를 둘러싸고 있는 기단부의 오른쪽 아래에 부처님의 두 발자국이 새겨진 바위(佛足石)가 놓여져 있다. 길이 약 90cm의 발바닥 형상에는 애초 법륜과 물고기, 챠크라 등의 형상이 새겨져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보이지 않는다. 수많은 참배객들이 보리수 아래에서 합장하여 머리를 숙이고, 오체투지를 하고 있는 티베트 여인의 모습도 보인다. 불족석과 금강보좌를 향하여 합장한 채 진언을 외우고, 사원의 벽에 이마를 붙이고 기도를 하고 있는 순례객들의 모습이 너무나 진지하고 애틋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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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선처(七禪處)

1선처 : 첫째 주, 화엄경을 설하신 보리도량

깨달음을 얻으신 부처님께서는 1주일간 금강좌에만 앉아 계신 채 깨달음의 법 12인연(十二因緣)을 쉼 없이 관하시고, 모든 법이 인연 따라 생기고 소멸하는 우주의 이치를 완전히 파악하셨다. 그리고 선정 속에 머무시는 동안 시방세계의 모든 불·보살들이 모인 가운데 법회를 열어 우주의 진리를 꿰뚫는 화엄경(Avatamsaka-sutra)'을 설하시게 되는데, 이곳 금강좌의 보리도량에서는 80화엄 중 세주묘엄품(世主妙嚴品) 이하 6품을 설하셨다고 전하고 있다. (60화엄에 따르면 世間淨眼品 이하 2품을 설한 것으로 되어 있다고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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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이곳 보리도량 곁에 있는 보광명전(普廣明殿)에서도 화엄경의 많은 부분을 설하시게 되는데, 이런 연유로 부처님의 성도 후 화엄경을 설하신 최초 37(21)간을 화엄시(華嚴時)라 부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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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선처: 둘째 주, 보리수를 바라보았던 장소(靜眼 스투파) 첫 일주일을 보내신 부처님께서는 대보리사의 동북쪽에 위치한 언덕에 올라 그곳에서 일주일 동안 깨달음을 이루신 보리수만을

그냥 뚫어지게 바라보시게 되는데, 현재 이곳에는 아니미샤 로차나(Animisha Locana:靜眼) 스투파라고 불리는 탑이 세워져있다. 현장법사의 대당서역기“7일 동안 보리수를 보는데 눈을 잠시도 움직이지 않았다고 한다. 이것은 보리수의 은혜에 보답하기 위한 것이었다.”는 기록이 있다. 정안 스투파는 화엄경을 설하신 보광명전으로도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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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선처 : 셋째 주, 경행처(經行處)18개의 연꽃대좌 보리수를 바라보며 일주일을 보내신 부처님께서는 다시 보리수 옆, 지금의 대보리사 북쪽담장 곁으로 옮겨 그곳에서 일주일 동안

동서로 왕래하시며 경행(經行)을 하시게 된다. 그때 부처님께서 가벼운 걸음을 옮기실 때마다 땅에서 연꽃이 피어올라 부처님의 발을 받쳐드렸다고 하는데, 현재 이곳에는 18개의 연꽃대좌가 조성되어 있다. 순례객들이 라타나칸타마 차이타란 이름의 연꽃대좌 위에 올려놓은 노란 연꽃접시가 주위의 담장과 보리수를 장엄한 노랑색 꽃 사슬과 함께 아름다움을 더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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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선처 : 넷째 주, 오색(五色) 광명을 발하신 곳 - 라트나그라하 사원 부처님께서 경행을 하신 곳의 북쪽에 또다시 일주일을 보내신 장소, 라트나그라하 사원이 있다. 이곳은 부처님의 성도 시 범천(Brahma)과 제석천(Indra)이 칠보로 장식된 집()과 칠보좌(七寶座)를 만들어 부처님께 공양하였다는 곳으로, 부처님이 이곳에 머무실 때 몸에서 파랑, 노랑, 빨강, 오렌지 및 흰색의 오색광명이 피어올라, 그 아름답고 신비한 빛이 보리수를 한참동안이나 비추었다고 한다. 현재 불교계가 상요하고 있는 불교기(佛敎旗)는 당시의 오색광명을 바탕으로 만든 것으로, 오색이 갖는 깊은 뜻은 불자들의 마음을 경건하게 한다. “흰색은 깨끗한 마음으로 온갖 번뇌를 맑히는 청정(淸淨), 오렌지색은 수치스러움과 그릇된 길로의 유혹에서 잘 견디고 이기는 인욕(忍辱), 빨간색은 항상 쉬지 않고 수행에 힘쓰는 정진(精進)을 상징하며, 노란색은 찬란한 부처님의 몸빛과 같이 변하지 않는 굳은 마음(), 파란색은 마음을 흩트리지 않고 부처님의 법을 구하는 정근(精勤)을 또한 상징하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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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선처 : 다섯째 주, 반얀(Banyan)나무 - 법구경을 설하신 곳 마하보디사로 가는 계단이 끝나는 지점에 부처님께서 일주일 동안 선정에 잠겨 계시던 또 다른 장소가 있는데, 현재 반얀나무(또는 아자팔라 니그로다 나무)가 서 있는 곳이다. 부처님께서 이곳에 좌정하고 계실 때 한 브라흐만이 찾아와서 법을 청하자 부처님께서 다음과 같은 법구경의 말씀을 설하셨다고 한다.

 

연잎 위의 물과 같이 바늘 위의 겨자와 같이, 욕심에 물들지 않는 사람을 나는 브라흐만이라 부른다. 다툼 속에 있어도 다투지 않고 사나움 속에 있어도 성내지 않으며, 유취(有取) 속에 있어서 무취(無取)인 사람을 나는 브라흐만이라 부른다. 사람이 만일 이 세상에 있어서 혹은 짧고 혹은 길며, 혹은 거칠고 혹은 고우며 혹은 깨끗하고 혹은 깨끗하지 않는 것을 묻지 않고, 주어지지 않는 물건을 받지 않으면, 나를 그를 브라흐만이라 부른다. 사람의 멍에를 끊고 신의 멍에를 넘어, 모든 멍에의 속박을 떠나면 나는 그를 브라흐만이라 부른다. 브라흐만은 그의 출생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행동으로 하여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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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선처 : 여섯째 주, 무칠린다(Mucalinda) 용왕 못 대보리사의 남단에 위치하고 있는 이 연못에는 수많은 연꽃이 피어 그 아름다운 모습을 뽐내고 있고, 연못 가운데에는 조그만 탑 속에 불상이 모셔져 있다. 당시 연못의 서쪽 기슭에서 7일간 선정에 들어 계시던 부처님 주위를 연못에 살고 있는 무칠린다라는 용왕이 일곱 바퀴 둘러싸고 머리를 펼쳐 안개와 비바람, 천둥번개를 막아주었으며, 이런 가운데 부처님께서는 다음과 같은 생각을 하셨다고 한다. “이제 모든 번뇌가 다하고, 나의 할 일은 마쳤다. 나고 죽음의 바다는 마르고 구원겁에 쌓아온 원행(願行)은 다 찼다. 그러나 내가 깨달아 얻은 법은 매우 깊고 어려워 오직 부처와 부처가 서로 증명할 뿐, 저 어둡고 혼탁한 인간들은 탐진치와 사견과 교만 등에 덮이고 막히어 복은 엷고 근성은 둔하고 지혜와 선근이 없어 나의 법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인가. 이제 내가 그들에게 법을 바로 설한다면 그들은 반드시 미혹하여 믿고 받아들이지 못할 것이요, 도리어 나를 비방함으로 말미암아 장차 악도에 떨어져 모든 고통을 받게 될 것이니, 나는 차라리 조용히 열반에 드는 것이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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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부처님의 마음을 알아차린 제석천왕과 범천왕 등 모든 하늘은, 생사의 바다에 빠져 헤매는 중생들을 구제하기 위하여 대자비의 법을 설해 주실 것을 세 번이나 간청하였으며, 이에 부처님께서 이 요청을 받아들이시고, 장소를 옮겨 또다시 7일 동안 선정에 드신 채 끝없는 법열을 받으셨다. (불본행집경, 잡아함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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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선처 : 일곱째 주, 라자야타나(Rajayatana)나무

대보리사 남쪽에 있는 이곳은 부처님께서 6주째의 선정 다음에 다시 선정에 드신 장소이다. 이곳에서 선정에 드신 가운데 깨달음의 법을 듣고 깨칠 수 있는 사람들을 관찰, 6년 전의 스승인 아라라가리마와 우드라카라마푸트라를 천안으로 관찰하였으나, 이미 세상을 떠나셨으므로, 같이 고행했던 다섯 수행자들에게 법을 설하고자 마음을 정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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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불교성지 순례 답사기 [ 법진 이상호] 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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