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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불교성지 순례 답사기 [법진 이상호] Ⅲ

4일차 1월10일(수) (보드가야-->라지기르 -->나란다--> 바이샬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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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18.01.25 1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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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4시에 기상, 5시 아침공양, 6시 라지기르로 버스로 약 2시간 이동

영축산, 빔비사라왕 감옥, 죽림정사, 1시간 이동 , 나란다 대학, 4시간이동 바이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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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축산에서 기도하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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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후 단체사진 , 안개가 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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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영축산

영축산(靈鷲山)은 붓다가 법화경의 꽃을 피우던 정상 부근의 바위가 마치 독수리 머리처럼 생겼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 불교의 저 유명한 염화시중(拈花示衆, 꽃을 따서 무리에게 보인다)’이라는 화두를 낳은 곳이기도 하다. 하루는 붓다가 영축산 산상법회에서 범왕(梵王)이 공양한 연꽃을 대중에게 들어보였다. 사람들은 그것이 무슨 뜻인지 통 깨닫지 못하고 있을 때, 제자 가섭(迦葉)만이 미소를 지었다. , 말을 하지 않고도 마음과 마음이 통하여 깨달음을 얻게 된다는 뜻으로 쓰이는 염화시중은 훗날 선() 수행의 중요한 화두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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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다는 영축산에 올라 많은 중생을 해탈의 길로 안내했다. 그는 세상을 욕망과 증오, 어리석음으로 불타는 화택(火宅)에 비유했다. 그래서 눈으로 보는 괴로움과 즐거움에 집착하지 말라고 권유했다. 집착을 놓을 때 비로소 해탈에 이를 수 있다는 것. 영축산 정상에 조성된 설법터에는 각국에서 온 순례자들이 꽃과 향을 피우며 연신 절을 올렸다. 불교 성지 어디엘 가도 만날 수 있는 어진 중생의 모습이다. 영축산은 당시 죽음을 앞둔 노인들이 독수리밥이 되기 위해 찾아들던 곳이기도 하다. 붓다는 아무도 눈길을 주지 않는 그 노인들에게도 열심히 법을 전했다. 붓다의 가르침을 듣는 그들은 참으로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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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난 동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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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빔비사라왕 감옥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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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죽림정사

중인도 마가다국의 수도인 다자그리하(王舍城이라고도함) 북방에 있는 가란타죽림(迦蘭陀竹林)에 최초로 생긴 불교사원, 가란타죽원(迦蘭陀竹園)죽원가람(竹園伽籃)이라고도 한다. 코살라국 사위성(舍衛城)의 기원정사(祈園情舍)와 함게 불교 최초의 2대가람(二大伽濫)으로 불린다. 석가모니가 생존해 있을 때 자주 이곳에 머물면서 설법한 불교 포교의 중심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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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당서역기 大唐西域記>에 의하면 가란타죽림은 가란타(迦蘭陀 Kalandaka)장자의 소유로서 왕사성의 여러 동산들 가운데 가장 뛰어난 곳이었다. 가란타 장자는 본래 외도(外道)를 숭배햇으나 뒤에 석가모니의 설법을 듣고 불교로 개종하면서 이 죽림을 승단에 기증했다. 이 죽림에 당시의 마가다 국왕인 빔비사라 왕이 가람을 지어서 정사가 이루어졌다. 그러나 <과거현재인과경 過去現在因果經> <사분율 四分律> 에 의하면 이 죽림도 빔비사라 왕이 보시한 것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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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성지를 가던 꼭 어디에선가 구걸하는 아이들이 많이 몰려 온다. 나는 죽림정사를 순례하고 나오는중에 구걸하는 어느 어린 여자아이의 눈빛을 잊을수가 없다. 너무나 애절하게 좀 보태달라는 거의 눈빛은 살고자하는 너무나 애잔한 표정이었다. 가슴이 너무 아파 그 애에게 1달러를 건네 주니 똑 같이 생긴 다른 여자아이도 같은 표정으로 구걸을 한다. 그래서 그 애에게도 1달러를 몰래 건네 주니 고마워서 웃고 고맙다며 내 손을 만지며 계속 버스까지 다라와 고맙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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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애들 둘다 머리를 쓰담아 주고 버스에 올랐는데 귀국하는 날가지 귀국한 지금 가지도 게들의 눈빛을 잊을수 없다 . 저 불쌍한 백성을 어떻게 구원하리요. 부처님 ! 부처님은 어떻게 저리 불쌍한 이들을 그대로 보고만 계시는 것입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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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애들만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아려온다. 이 마음은 성지를 다니는 곳곳 늘 똑 같은 현실이며 그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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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나란다 대학터

불교최대의 대학 나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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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Nalanda는 부처님의 10대 제자 중 이곳 출신인 사리불과 목건련에 의해 인연의 뿌리가 내려졌고 그후 승단이 형성되면서 종합수도장으로 성장하여 세계 최초, 최대의 불교 대학으로 교육과 사원의 기능을 같이한 곳이었다. 나란다는 길이 11Km, 5km1만명의 학인 스님과 1500명의 교수 스님들이 살았다고 하며, 5세기 굽타 왕조 시대에 설립되어 1,199년 이슬람군의 공격을 받아 폐허가 될 때까지 1,600여 년 동안 인도뿐만 아니라 한국중국일본과 태국베트남을 비롯한 아시아 각국의 유학생이 몰려들어 다양한 학문을 연구하던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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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대(唐代)에 삼장법사로 알려진 현장 스님도 이곳에서 5년간 공부하였고 673년 이곳에 수학했던 의정 스님의 대당서역구법고승전(大唐西域求法高僧傳)에 이하면, 의정스님이 인도를 방문한 서기 671년 이전에 이미 4명의 신라스님들이 이곳 나란다에 와서 수학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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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땅 수십만리 길도 마다하지 않고 목숨을 건 구도의 길을 걸러 이곳 나란다 대학에서 수학했던 우리나라 신라스님들의 이름은 혜업(慧業), 현태(玄太), 현각(玄恪), 그리고 아라야발마라는 이름의 스님이다. 나란다의 찬란한 빛이 파괴된 것은 이슬람의 침공 때문이었다. 1199년 무하마드는 불교사원을 무차별 파괴하였고 스님들은 그들의 만행 앞에 처참하게 죽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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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란다 불교대학의 거대한 유적은 지금 10분의 1정도 발굴하였고 기숙사를 겸한 사원터 14개소가 드러났다. 유적지 한켠에 부처님 10대 제자중 지혜 제일로 꼽히는 사리불 존자의 사리탑이 웅장한 모습으로 세워져 있으며 그 조각상들도 그대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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