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8(목)

인도 불교성지 순례 답사기 [법진 이상호]

1일차 1월7일(일) (인천공항--> 델리공항 --> ITC Welcome Hot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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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18.01.22 2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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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7일부터 15일까지 김천불교대학 인연으로 함께한 이상호 거사가 인도 불교성지 순례답사기를 전해와 1-2일차, 3일차, 4일차, 5-6일차, 7,8,9일차 별로 시리즈로 편집하여 기사화 한다.



인도 불교성지 순례 답사기

                                                                                   2018. 01. 07 ~ 01. 15

                                                                                                 법진  李 相 昊


순례 일자별 여정

1일차 1/7() 경산--> 동대구--> 인천공항 --> 델리공항 --> 호텔

2일차 1/8() (델리공항--> 바라나시 --> 사르나트--> Clarks Hotel)

7시에 기상, 8시 아침, 9시 델리공항으로 이동 , 국내선 비행기로 바라나시로

1시간 30분 이동 , 초전법륜지 사르나트로 이동, 겐지스강 관광

3일차 19() (바라나시--> 보드가야--> Anand International Hotel)

3시반에 기상, 4시반 아침, 5시반시 보드가야로 6시간 이동

수자타마을, 마하보디사원 순례 (보리수, 마하보디탑, 금강좌, 7선처)

4일차 110() (보드가야-->라지기르 -->나란다--> 바이샬리 )

4시에 기상, 5시 아침, 6시 라지기르로 버스로 약 2시간 이동, 영축산,

빔비사라왕 감옥, 죽림정사, 1시간 이동 , 나란다 대학, 4시간이동 바이샬리

5일차 111() (바이샬리--> 케사리아-->쿠시나가르-->국경-->룸비니)

4시에 기상, 5시 아침, 6시 사리탑, 대림정사 , 쿠시나가르로 4시간반 이동

케사리아에서 발우탑, 쿠시나가르, 다비장 순례, 네팔로 5시간 이동 룸비니

6일차 112() ( 네팔 룸비니 --> 국경 --> 쉬라바스타 --> 럭나우)

아침 5시에 기상, 6시 아침공양, 630분 마야데비사원 ,

국경 쉬라바스티 수닷타 스투파, 앙굴리마라 스투파 , 기원정사

7일차 113() ( 럭나우 --> 아그라 )

아침 5시에 기상, 6시 아침공양, 630분 출발 아그라로 6시간 이동 ,

아그라 시내 관광 (타지마할, 아그라성, 시내 관광)

8일차 114() ( 아그라 --> 델리 )

아침 6시에 기상, 7시 아침공양, 8시 델리로 6시간 이동 ,

델리공항 출국 수속 , 1940분 비행기 출국

9일차 115() ( 델리 --> 인천 --> 동대구 )

아침 6시에 인천 도착 입국 , 642분 동대구발 KT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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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차 1월7일(일) (인천공항--> 델리공항 --> ITC Welcome Hotel)

경산--> 동대구--> 인천공항 --> 델리공항 --> 호텔

인도 여행가기전 친구 녀석들에게 인도가서 자아성찰을 좀 하고, 인간 좀 돼서 오겠다고 인도여행 간다는 것을 농담 삼아 자랑하니 친구 녀석들이 “니가 인간이 아니면 이 세상에 인간인 사람이 없다”라고 한다. 친구 놈들이 “ 인간이 무엇인지 알고하는 소리 일까 ? 인간은 과연 무엇일까 ?” 새벽 4시30분에 일어나 준비하여 5시에 집을 나서 6시에 동대구에서 출발하여 인천 공항으로 가는 KTX열차에 몸을 싣고 설레는 마음으로 불교성지 순례를 떠났다. 공항역에 도착하니 8시50분 좀 일찍 도착하여 커피한잔 하고 있으니 김천에서 오시는 24명이 10시30분에 도착했다. 김천 특유의 사투리가 너무 정겨웠다. 잠시후 여행가이드의 대략적인 설명을 듣고 출국 수속을 마치고 출국장 24GATE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50분이 연착이 되어 13시35분에 탑승하여 출국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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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에 다 와서 델리공항에 착륙이 약 25분간 지연이 된다는 방송에 인도 내리기전에 인도다움을 느껴본다. 인도로 가는 기내에서 나는 불교신자들이 순례하는 것보다, 우선 부처님의 일생에 대해서 또 각 성지에 대해서 구석구석 보고알고 싶은 생각으로 예불도 잘 모르고 불경도 전혀 모르는데 순례하러 오신 순례단들게 피해를 주지 않을까 조심이 되었다. 그래도 부처님의 숨결을 느끼고 부처님을 뵈러 간다는 마음은 같으리라. 비행기에서 설레인다. 부처님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알고 가야지 싶어 정리한 자료를 보지만 뒤돌아서면 까마귀 고기를 먹었는지 특히 인도 지명, 사람이름은 금방 까먹어 버린다. 장장 9시 25분에 걸친 여행을 마치고 무사히 델리공항에 도착하니 공항 내에 설치되어 있는 부처님의 손이 우리를 반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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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항 밖을 나오니 날씨는 염려 했던것 보다 춥지 않았으며, 공항주위에 먼지가 잔뜩 썪인 안개와 그 속의 많은 사람들 뭔가 정리가 되지 않은 듯한 사회 기반시설과 주위환경에 안개먼지(Fog)로 온 천지가 잘 보이지도 않고 뿌옇다. 전용 버스에 짐을 싣고 호텔로 이동 하는데 벌써 어두워져 주위는 잘 보이지 않으나 주변이 그렇게 밝지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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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로 이동중, 버스는 나쁘지 않음

호텔에 도착하니 너무 늦어 컵라면으로 야식 겸 저녁을 먹고

짐 풀고 내일 여정을 위해 씻고 잠자기 바쁘다. 인도 불교성지 순례의 첫날은 이동으로만 하루가 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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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나시 공항에 있는 코끼리 상 바르나시 시내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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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차 1월8일(월) (델리공항--> 바라나시 --> 사르나트--> Clarks Hotel)

아침 7시에 기상, 8시 아침공양, 9시 델리공항으로 이동 , 국내선 비행기로 바라나시로 약 1시간 30분 이동 , 초전법륜지 사르나트로 이동, 갠지스강 관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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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바라나시

베나레스(바라나시의 영어식 지명)는 바라나강과 아시강 사이에 있는 도시라서 바라나시라고 했단다.

바라나시의 역사는 기원전 1000년경 아리안족의 일부가 강가강 유역에 자리 잡으며 시작되었다. 지구상 사람이 살고 있는 도시, 살아있는 도시 가운데 가장 오래된 도시의 하나다. 바라나시는 2000여년 간 인도의 학문과 문명의 중심지였다고 한다. 여러 국가들이 이 지역을 정복했고 불교와 힌두교, 이슬람교가 모두 바라나시를 중심으로 성장하고 꽃을 피웠다. 그리고 오늘날 바라나시는 가장 종교적인 도시이며 가장 인도다운 도시로 손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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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일행을 싣은 버스는 오후에 바라나시로 들어섰다. ‘ 이제 인도인들이 사는 모습을 재대로 보게 되었다. 분주히 다니는 많은 사람들, 하지만 옷 차림새나 집들은 너무 열악 했으며, 거리는 너무 지저분하고, 주위에는 온 천지 먼지투성이며 나무도 먼지를 폭 뒤집어 쓰고 있다. 내가 기대 했던 모습보다 너무 못 미쳤으며 티벳 보다도 못한 삶이다. 또한 차창 밖으로 보이는 어떤 사람에게도 웃음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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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세기 중국의 구법승 현장 스님은 ‘대당서역기’에서 ‘바라닐사국’이라는 이름으로 다음과 같이 바라나시를 소개하고 있다. “…마을이 즐비하게 서 있으며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매우 많았다. 집마다 엄청난 부가 넘쳐나고 방마다 신기한 재화로 가득 차 있다. 사람들의 성품은 온화하고 공손하며 세속에서는 학문을 익히는 데 힘쓰고 있다.…” 예로부터 바라나시는 상업의 중심지였다. 특히 바라나시는 옷감, 그 가운데서도 화려한 색의 실크로 유명했단다.

 

또한 세상의 모든 향기로운 것들을 다 섞어놓은 듯 한 향료가 가득한 도시이기도 했다. 귀한 옷감과 향료는 도시를 풍요롭게 했고 그 풍요를 기반으로 철학과 종교가 꽃을 피웠다. 수행자들이 모여들었음 또한 당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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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사르다트 박물관

시간 관계상 사르타트 박물관을 먼저 보기로 했다. 바로 앞이 녹야원이다. 저 멀리 다메크 탑이 보인다

 

박물관 중앙 홀에 인도의 국가문장인 '4사자상'을 전시해놓았다. 박물관 안에는 많은 유적이 전시되어 있다.

 

전시장내에서 가장 유명한 부처님의 처음 설법하시는 모습을 형상화 한 초전법륜상이 설법인을 하고 아주 명쾌한 모습으로 계신다. 또 녹야원의 아소카 석주 상단에 있던 것으로 이 '4사자상'은 지금은 인도의 문장(紋章)이 되었고, 모든 지폐에도 새겨져 있다고 한다. 법정스님 설명으로 4사자상 밑에 4마리의 동물 사자(지혜 용맹), 코끼리(리더, 풍요, 자손번창, 카네스)

소, 말이 새겨져 있다고 했다. 사진 촬영 구역이라 내부의 사진을 찍을수가 없어서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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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디메크 스투파(초전 법륜지 기념탑)

녹야원 내에 안 쪽에 있으며 녹야원 입구에 들어서면 멀리 거대한 대탑이 눈에 들어온다. 이곳이 석가모니부처님께서 처음으로 가르침을 펴신 초천법륜지임을 알리는 다메크스투파다. 벽돌을 쌓아올려 만든 거대한 석주모양의 이 대탑은 높이 34미터, 지름이 28미터에 달한다. 현재 남아있는 대답은 약 500여 년 전에 조성된 것으로 보이지만 수차례의 재건과 증축을 거쳐 오늘에 이르렀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관측이다. 실제로 대탑에서는 기원전 200년 경 마우리아왕조 시대에 만들어진 벽돌이 나오기도 해 이 같은 관측을 뒷받침해준다.


대탑의 표면을 장엄하고 있는 기하학 문양과 꽃무늬 역시 4~5세기 이 지역을 장악했던 굽타왕조의 것이다. 다메크스투파 주변으로는 수많은 건물의 유적이 흩어져 있다. 불상을 모셨을 사원터, 수행자들이 머물렀을 승원터, 탑을 세웠을 자리, 명상에 이용했을 수행터 등. 남아있는 기단의 모양과 건물의 배치된 모양을 통해 용도와 구모를 짐작해본다. 1500여 명의 스님이 수행하고 있었다는 현장 스님의 기록이 결코 허언이 아니다. 왕조의 흥망에 따라 번영하고 쇠퇴했을 녹야원 초전법륜지의 역사가 흩어진 벽돌기단의 흔적을 따라 서리서리 흐른다. 다메크스투파 앞에서 나는 잠시 부처님의 초전법륜을 듣기 위해 부처님 그 시대로 시간여행을 떠나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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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음을 얻은 후 석가모니부처님께서는 가장 먼저 법을 펼 대상으로 옛 스승이었던 알라라 깔라마를 떠올리셨다. 하지만 그는 이미 세상을 떠난 후였다. 수행자 웃다까라마뿟다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곳 바라나시의 녹야원까지 오는 동안 이교도 수행자, 뱃사공을 만났지만 그들 모두 진리의 법과는 인연이 없었다. 눈앞에 부처님을 보고도 법을 청하지 않았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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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서 그토록 먼 길을 걸어 이곳까지 오시는 동안 단 한 명이라도 법을 청했다면 초전법륜지는 이곳 녹야원이 아닌 보드가야와 바라나시 사이의 그 어디 즈음이 됐을지도 모른다. 지금 눈앞에 보이는 거대한 대탑 다메크스투파는 진리의 수레바퀴가 구른 최초의 순간, 그 역사적인 장소를 일깨우는 동시에 우렁찬 목소리로 말하고 있는 듯하다. 스스로 구하지 않고서야 어찌 얻을 수 있겠느냐고. 진리를 구하고자 한다면 법의 수레바퀴는 세상 그 어는 곳에서라도 당당히 구를 것이라고. 이곳에서 부처님은 옛 도반이었던 다섯 수행자를 위해 법을 펴기 시작했다. 해가 지고 환한 보름달이 뜰 무렵 진리의 수레바퀴는 구르기 시작했다. 그날 밤 다섯 수행자 가운데 꼰단냐가 처음으로 아라한과를 얻었다. 이후 닷새 동안 나머지 네 명의 수행자 모두 아라한과를 얻었다. 먼저 깨달은 이가 아직 깨닫지 못한 도반을 위해 바라나시 시내에서 탁발을 했다. 부처님께서는 깨달음을 얻은 그 첫해의 우기를 이곳 녹야원에서 다섯 비구와 보내셨다. 그러는 동안 바라나시 부호의 아들이었던 야사를 비롯해 모두 55명의 청년들이 녹야원으로 찾아와 부처님께 귀의하였다. 그들은 부처님과 함께 우기를 보내며 모두 아라한과를 얻었다. 이로써 세상에는 석가모니 부처님을 포함해 모두 61명의 아라한이 있게 되었다. 그들은 이곳 녹야원에서 함께 머물렀다. 60명의 아라한이 탄생한 곳. 녹야원은 부처님께서 성도하신 보드가야의 우루벨라와 더불어 지구상 그 어느 곳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성스러운 깨달음의 땅이 되었다.

 

4. 다르마 라지크 스투파(진리의 왕 탑)

녹야원 내에 있으며 녹야원에서 제일 먼저 만나는 큰 유적이 다르마라지카 스투퍼 (진리의 왕 탑)이다. 이 탑은 부처님의 진신사리탑이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직경 31.5m에 달하는 거대한 탑의 기단부위만 남아 있다. 영국 식민시절인 1794년, 바라나시 지역의 지방 장관이 부처님 사리탑인 ‘다르마라지카’탑을 헐어 벽돌을 채취하여, 자신의 저택을 짓는데 사용하였다. 그때, 알 수 없는 고대 문자가 새겨진 상자를 발견하고, 그게 뭔지도 몰랐지만, 사리함과 안에 들어있던 대리석으로 만든 사리호는 관심이 있어서 보관하고, 사리호에 담긴 내용물, 즉 부처님 진신사리는 갠지스 강에 버렸다고 하니 너무나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현재 그 사리함과 사리호는 뉴델리 국립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고 한다. 정말 한편의 코미디와 같은 일이지만, 지금의 기준으로 과거를 처단할 수는 없으리라.

 

석가모니부처님과 다섯 수행자의 재회. 수행자 싯다르타가 고행을 버리고 타락했다며 떠나갔던 다섯 수행자들은 붓다가 된 싯다르타, ‘환한 얼굴빛과 몸에서 뿜어 나오는 금빛 광채’에 휩싸인 옛 도반의 모습 앞에서 저절로 고개를 숙였다. 그가 다가오는 모습을 보면서 ‘외면하자’고했던 다섯 수행자들은 자신도 모르게 일어나 발우를 받아들고, 앉을 자리를 준비하고, 발

씻을 물을 가져와 석가모니 부처님을 맞이했다. 바로 이 자리에서. . .

 

다르마라지카 스투퍼 터 모습

초전법륜지 (디메크 스투파)에서 기도하고 나오면서 해가 서서히 질 무렵 다르마라지카 스투퍼 터(부처님의 진신사리 탑터)에서 같이 갔던 일행 모두 법성스님 따라 참선에 드니 너무나 감격스럽고 가슴이 벅차오른다. 법성스님 말씀대로 기가 샌 곳이어서 인지 기가 느껴지는 듯 하다.

 

4. 차우칸티 스투파 ( 영불탑 : 부처님을 맞이 한 곳을 기념한 탑 )

싯타르타의 수행자 꼰단냐, 왑빠, 밧디야, 마하나마, 앗사지 이들은 싯다르타의 곁을 떠났다. 싯다르타가 고행을 포기하고 수자타의 공양을 받았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렇게 헤어진 다섯 수행자들은 바로 이곳 바라나시 인근에 머물고 있었다. 당시 바라나시에 모여들었던 수많은 수행자들이 그러했듯 다섯 수행자 역시 숲에 머물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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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일행이 녹야원을 나올때 벌써 해질무렵이라 문이 닫겨 있어 들어가 가가이서 보지 못 한게 아쉽다

사르나트는 바라나시에 북동쪽으로 10km여 떨어져 있다. 지금은 별다를 것 없는 인도의 시골 마을이지만 붓다의 첫 가르침이 울려 퍼진 이 특별한 불연의 장소는 한 때 불교성지로 번영을 누리기도 했다. 인도 최초의 완전한 통일국가를 이루었던 마우리아왕조의 아쇼카 대왕이 기원전 262년 불교로 개종한 후 이곳 사르나트의 녹야원이 초전법륜지임을 알리는 석주를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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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세기에는 중국의 구법승 법현 스님, 7세기에는 현장 스님이 이곳을 찾아 불교성지로 번영한 사르나트의 모습을 기록으로 남겼다. 특히 7세기 중엽 이곳을 순례한 현장 스님은 당시 사르나트에 1500여 명의 스님, 100미터 가까이 되는 높이의 불탑, 거대한 아쇼카석주 등과 함께 수 많은 불탑과 사원들이 즐비했다고 기록, 사르나트가 불교성지로 여전히 흥성했음을 대변해주고 있다. 그러나 이후 이슬람교가 확산되면서 도시의 건물들은 파괴되었고 불교는 급속히 쇠퇴했다. 급격한 쇠락의 결과는 8세기 이곳을 순례한 신라의 구법승 혜초 스님의 기록 ‘왕오천축국전’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혜초 스님은 ‘피라날사국’이라는 이름으로 바라나시를 기록하며 “이 나라 역시 황폐했다. 왕도 없다.…당간위에 사자상이 있다.”라고 전했다. 도시와 유적은 이미 파괴됐고 아쇼카왕의 석주만이 제 모습을 간직하고 있었음이다. 파괴된 도시는 복구되지 못한 채 수백 년 세월을 방치되었고 오늘날은 그 흔적만이 남아있다.

1835년 영국 고고학자들에 의해 사르나트지역에 대한 발굴 작업이 시작되었다. 수많은 유물들이 쏟아져 나왔다. 유물의 상당수는 지금도 사르나트고고학박물관에 전시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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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겐지스강

우리는 초전법륜지에서 부처님을 처음 만난 그 감동을 갔고 겐지스강으로 갔다

가는 길이 복잡해 버스에서 내려 걸어갔는데 가는 길은 복잡하고 인파가 너무 복잡해서 일행을 따라가기도 힘이 든다. 도로에 온통 먼지투성이, 오물 쓰레기가 가득하며 강에 가까이 갈수록 나무장작을 많이 재 놓은 것 과 강가에서 연기가 자욱한 것을 보니 이상한 묘한 기분이 든다. 인도 사람들이 평생 겐지스 강에 가서 목욕하고 죽어서 재로 겐지스에 뿌려지는 게 소원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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겐지스에서 화장 못하면 평생 한번은 꼭 겐지스강을 가는게 소원이라고 한다. 우리 일행은 배를 타고 겐지스강을 거슬러 상류로 올라갔다. 강가의 가트에서는 힌두제사의식 아르띠뿌자도 몇군데에서 행하고 있으며 약간의 성스러움도 느껴진다. 제사를 행하는 브라만들의 모습이 절도가 있고 잘 연습된 것 같으며 매우 진지해 보인다. 좀 더 상류로 올라가 보니 약 스무 군데에서 화장을 실시하고 있다. 하지만 화장할 때 시체나 나무 타는 냄새는 전혀 나지 않는다. 참 이상하다. 그 주위에 많은 사람들이 있으며 바로 뒤에는 게스트하우스도 보인다. 인도 사람들에게는 죽음과 삶이 구분이 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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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항하사(恒河沙)

항하사(恒河沙)는 인도의 갠지스 강을 나타내는 단어인 항하(恒河)에서 비롯된 수의 단위를

나타 내는 명칭이다. 항사(恒沙)라고도 하며 무수히 많다는 것을 뜻하는 표현이다. 항하사는 갠지스 강의 모든 모래를 합한 숫자라는 뜻으로, 수리적으로는 1052을 뜻한다고 한다. 금강경에서 나오는 항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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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아르띠부자 ( 흰두교 제사 의식 Arti pooja)와 가트

아르띠 뿌자, '푸자' 혹은 '뿌자'라고 줄여서 부름. 성스러운 신들의 땅 바라나시에서는, 매일 밤 해질녘에 거대한 종교행사가 펼쳐진다. 보통 푸자 (Pooja) 라는게 힌두교의 제사의식이다. 그 중 아르띠 뿌자는 바라나시를 대표하는, 아주 유명하고 성스러운 의식으로 알려져 있다. 힌두교가 신성시하는 어머니의 젖줄같은 갠지스강과 강을 따라 ‘강가와 맞닿아 있는 계단’을 뜻하는 수많은 가트가 조성되어 있는 곳으로 가트의 화장터, 불타는 시신, 목욕하고 기도하는 신자들, 유람하는 관광객들로 북적이며 신비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곳이다. 이 물에 목욕을 하면 이 세상의 모든 죄가 씻겨진다고 생각하고 있다. 또한 죽은후 이곳에 재가 뿌려지면 윤회로부터 해탈을 얻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죽음이 임박해 이곳을 찾아오는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이기도 하기에 해마다 수많은 순례자들의 방문이 끊이지 않는 곳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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