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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선종 대가람 직지사 천불 가사불사 점안법회

현존 한국 최고의 천불상으로 그 문화적 가치가 높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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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18.09.01 2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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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불교조계종 제8교구본사 직지사는 천불 가사불사 점안법회를 가지고 직지사의 천불신앙을 재조명하는 계기를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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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산 직지사 주지스님, 도진 중암주지스님, 도편수 무상스님을 비롯한 8교구 소속 사찰·암자 스님 및 주윤식 제8교구 신도회장, 김철수 직지사 신도회장을 비롯한 신도 등이 참석한 가운데 직지사 비로전에서 고 선종 대가람 직지사 철불 가사불사 점안법회를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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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점안법회는 정오스님, 보천스님의 집전으로 진행되었으며, 개회 선언, 삼귀의, 청법가에 이어 도편수 무상스님 법문, 웅산 법등 주지스님 인사말 등의 순으로 진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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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지사의 천불신앙은 1656년에 처음 조성을 시작하여 1784년까지 계속되었으며, 현재 천불상이 남아 있는 곳은 직지사, 대흥사, 마곡사, 무량사, 법주사, 선운사, 화엄사 구충암, 예산 향천사 등으로 손꼽을 수 있으며, 이 가운데 조성에 대한 정확한 기록이 남아 있는 곳은 직지사 천불상과 대흥사에 한하며, 직지사가 1656년에 조성을 시작하여 대흥사 보다 161년이 빠르고 조각 기술면에서 뛰어나 현존 한국 최고의 천불상으로 그 문화적 가치가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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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불전의 천불조성과 중수과정은 효종 7(1656) 경잠(景岑)스님이 천불조성 발원을 하여 현종 2(1661) 인계(印戒)스님이 천불전을 창건하였으며, 현종 9(1668) 기일(機日)스님이 천불전을 단청하고 불상 5위 새로 조성 안치 했다. 숙종 28(1702) 성호(性湖), 인휘(印輝) 스님 중수를 할 때 속리산에서 혜암(惠菴)스님을 상편수(上片手)로 모셔와 천불전 중수 하였으며, 단청에는 삼익(三益), 탁휘(卓輝) 스님 등이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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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68년 천불전 상량문에는 영조 44(1768) 신경(信瓊) 사언(師彦) 스님이 중수를 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도편수는 양신(良信) 스님이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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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76년 필사본으로 전하는 직지사 고선종 대가람 사적에 따르면 이 때 천불전은 비로전(毘盧殿) 봉천불(奉千佛)로 기록되었으며 정면 5칸의 건물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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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4년 천불 조성기에 따르면 정조 8(1784)에 부족한 259위의 불상을 경주 기림사에서 조성하여 이듬애 정월 24일에 길을 떠나 각 절의 승군들이 가마(輦:연) 22대로 육로로 이운하여 224일 직지사에 도착했다. 210일에는 옛 불상 741위를 도채 중수하고 224일에 점안 후 225일 천불을 봉안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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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때 금어는 당시 화사로 널리 알려진 유성스님 외 여러 스님이었으며, 화엄학의 종장으로 명성이 높던 영파성규(影坡聖奎) 법사가 증명으로 참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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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6년으로 추정되는 황악산직지사적’ ‘전우영건(殿宇營建)’ 조에 천불전이 14칸으로 나와 있어 좀 더 규모가 커진 것으로 보인다. 1896년에는 천불상은 금분 개채 후 1899년에 전각을 중수하였다. 이후 금분이 갈라지고 빛을 일허 일제강점기인 1922년에 영파당성규대사의 5세손인 마옹스님에 의해 천불중수불사가 있었다. 천불전에 대한 자료는 1939년의 마지막 중수 기록까지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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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5년부터 이듬해에 걸쳐 천불에서 모자라는 40위의 불상을 석고로 조성하였으며, 1976년에 원래의 자리에 새 건물을 지어서 비로선이라 편액하여 지금의 모습에 이른다. 1992년에는 호부위에 금을 올리는 불사를 했다. 이금박이 트고 갈라져 200311월부터 1년 여에 걸쳐 금박과 호분을 벗겨내고 옻칠을 한 뒤 4회에 걸쳐 호분을 입히는 불사를 행하였다. 앞서 석고로 만든 불상 또한 석조불상으로 대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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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가을 비로전 후벽 화재 후 불상의 개체 중수를 계기로 20063월에 비로전 불상과 함께 남월료 불상의 복장을 해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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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5월 화재에 그을린 천불상 개체 중수(도분)완료, 현재 비로자나불과 약사불, 노사나불(보관형)로 봉안된 불상의 각 복장에서 나온 기문을 살펴보면 강희 7(1668)에 오존불로 조성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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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10년후 2017년 봄부터 20188월까지 제8교구 본사 주지 웅산스님이 천불 가사불사를 발원하여 도편수 무상스님과 재무 해철스님이 화주 및 도감을 맡아 사부대중과 함께 불사를 진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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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망경승가율에 따르면 문수보살이 중생이 무슨 인연을 지어야 복을 짓곘습니까?’라고 물었을 때 부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가사 불사가 복전의 으뜸이다. 가사는 여래의 옷이며 보살의 옷이니, 가사불사에 동참하여 공덕을 짓는 이는 속히 뛰어난 과를 얻게 된다. 세상에서 가장 큰 공덕 중에서 복전인 가사를 시주한 사람은 한량없는 복을 지어 모든 재앙이 소멸되고 백가지 복이 구름이 일 듯 일어난다. 모든 질병과 가내 재액이 영영 소멸되므로 사후에는 천상에 태어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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