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 선봉에 선 포월당 봉률스님 추모 다례재
식민지 동토에 광복의 꽃씨 뿌린 선지식인
승려의 신분에도 불구하고 기미년 3.1 독립운동 당시 독립선언서를 배포하고 일제강점기의 동토에 광복의 꽃씨를 뿌리신 봉률 스님의 업적을 기리기 위한 추모 다례재가 봉행됐다.
직지사 주지 운해 법보스님, 법등스님, 중암 회주 도진 큰스님 및 직지사 말사 스님, 강병직 직지사신도회장, 유족 김죽자 여사를 비롯한 김충섭 시장, 송언석 국회의원, 김세운 시의회 의장, 나기보‧박판수 경북도의원, 이복상 김천시의원 및 사부대중이 참석한 가운데 11일 직지사 봉률스님 추모비 앞에서 ‘포월당 봉률스님 추모 다례재’가 진행됐다.
이날 행사는 불교의식에 따라 천수경, 삼귀의, 한글 반야심경 봉독, 헌향 및 헌다, 행장소개, 조가, 조사, 추모사, 추모시 낭송, 인사말, 종사영반, 헌화, 만세삼창 순으로 진행됐다.
포월당 봉률스님은 1897년 6월 23일 경남 합천군 가야면에서 태어나 퇴운 큰 스님을 은사로 축발하여 1905년~1910년까지 해인보통학교와 해인사지방학림에서 수학한 스님은 일본에서 불교대학을 졸업했다.
1919년 3.1운동 때는 해인사를 중심으로 만세운동을 주도했으며, 1919년부터 1922년까지 서간도 만주신흥무관학교에서 교육을 받은 후 만주일대에서 광복군으로 활동했다. 1922년 전국 사찰을 무대로 광복군 자금 모금운동을 하다가 일경에 체포돼 징역 2년형을 언도받고 서울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으며, 1946년 남로당 비밀요원이라는 누명을 쓰고 고문 폭행을 당했다.
봉률스님은 지난 1996년 8월 15일 건국훈장 애족장에 추서되었으며, 지난 2004년 입적 47년 만에 독립유공자로 지정됐다.
한편, 봉률스님은 1927년부터 1948년까지 직지사 주지를 역임하면서 가람 불사와 대중 포교에 매진하기도 했다.
이날 직지사 주지 운해 법보스님, 김충섭 시장, 송언석 국회의원, 김세운 시의회의장은 애국애족정신이 지극하셨던 포월당 봉률스님의 행장이 더욱 더 널리 알려지고 나라 사랑하는 마음이 온 국토에 퍼져나가길 소망하였으며, 다가오는 8.15 광복절은 조국을 위해 몸 바친 선열들의 뜻을 한번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는 추모사를 전했다.
이어 3.1운동 당시 실제로 사용하던 태극기를 재현하여 일제 제국주의의 침략에 맞서 온 몸으로 항거하신 포월당 봉률스님의 독립정신을 되새기면서 대한독립만세를 만세삼창하는 뜻깊은 자리를 가졌다.
한편, 경북포교사단 중부총괄팀은 기미독립선언문을 요약한 목판과 3.1 독립운동 당시 사용하던 태극기와 상해 임시정부에서 사용하던 태극기를 재현하는 판화체험 부스를 마련하여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선열들의 고귀한 뜻을 되새기고 애국심을 함양하는 자리를 마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