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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16.05.02 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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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리본과 어느 선교사]
 
교계가 점점 활기를 잃어가고 있다. 자본주의의 부정적 현상인 '부익부 빈익빈'이 교회라고 가만 두지 않는다. 큰 교회는 더 커지는 반면 작은 교회는 더 쪼그라드는…. 그뿐만이 아니다. 교회의 노선 문제로 진보와 보수 그리고 극우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하나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를 두고 아전인수(我田引水)의 함정에 빠져 있는 것이다.
 
교계의 상황이 이렇다 보니, 작은 교회는 말할 것도 없고 큰 교회들도 그들 나름대로 어려움을 토로하고 있다. 이 어려움은 해외 선교지에도 그대로 이어진다고 한다. 미국에 이어 세계 2위를 자랑하는 선교 선진국 우리나라, 국내 교회의 후원이 근간이 되어 진행되는 해외 사역이 후원 중단으로 몹시 힘들어지고 있다고 한다.
 
이런 어려움을 타개해 보고자 짬을 내어 귀국, 선교지 소식을 전하고 후원을 요청하려는 발걸음이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선교 보고를 할 교회 찾기가 쉽지 않다. 교회들이 선교사가 방문하는 것을 몹시 부담스러워한다는 것이다. 헌금의 감소로 지금 후원하고 있는 선교지도 끊어야 한다며 말문을 막는 교회가 많다는 전문이다.
 
한 선교사 부부가 비슷한 이유로 귀국해서 한 달 여 머물다 갔다. 가까이 지내는 목사님의 후의로 사택에서 편히 지내다 출국할 수 있어서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다. 그 목사님 내외와 선교사님 그리고 우리 부부, 이렇게 세 쌍이 어우러져 국내에 있는 세 분의 순교기념관을 방문했다. 새로 건립된 곳들인데 영적 갈증을 채울 수 있어서 좋았다.
 
 
꾸미기_세월호 배지.jpg

사진설명 1)세월호 2주기 목회자 기도회에서 받은 십자가가 든 세월호 배지
 
 
그때 나의 옷깃에 노란 리본 안에 십자가가 박힌 배지(badge)가 달려 있었다. 4.16 세월호 참사 2주년 목회자 기도회에 참석해서 받아 단 배지이다. 그런데 이것을 눈 여겨 보지 않고는 세월호와 연결 지어 생각하기가 쉽지 않다. 어떻게 보면 노란 리본이 '익투스(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임)'의 물고기로도 보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선교사님은 내 옷깃에 부착되어 있는 배지가 세월호와 관계있다는 것을 대번에 알아 차렸다. 그 뒤 좀 다른 눈으로 나를 보는 것 같았다. 세월호 참사는 백주 대낮에 아이들을 죽어가게 한 '생명'과 관련된 문제이다. 이데올로기와 진영 논리가 개입되어서는 안 된다. 억울한 죽음을 초월해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누구로부터인지 아니면 어떤 집단에서 시작되었는지 모르지만 이상하게 세월호 사건이 이데올로기 문제로 변질되고 말았다. 그래서 세월호 참사에 관심을 가지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 '종북 좌빨'이 된다는 것이다. 세월호 참사를 상징하는 리본을 의복 또는 가방 등 소지 물에 부착하고 다니면 사람들이 사시(斜視)의 눈으로 보기 일쑤다.
 
단적인 예화를 선교사님이 들려주었다. 그가 얼마 전에 직접 경험한 일이라고 한다. 수소문해서 정말 어렵게 한 중형 교회와 연결되어 선교 보고를 하러 갔다. 울산에 위치한 그 교회 예배 시간 중간에 보고를 잘 마쳤다. 스스로도 은혜를 느낄 정도로. 선교 보고 뒤 당회장실로 옮겨 간단하게 다과를 드는데 담임 목사님으로부터 전혀 예상하지 못한 말을 들었다.
 
"선교 보고를 잘 듣긴 했는데 후원은 좀 어려울 것 같습니다. 우리 교회는 종북 사상을 갖고 있는 선교사에겐 후원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거든요."
 
 
꾸미기_고리용 리본.jpg

사진설명 2)울산의 한 교회에 선교 보고 하러 간 선교사님이 달았을 법한 고리형 세월호 리본
 
 
선교 보고에 종북과 관련된 내용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더욱이 스스로 종북이라고 생각한 적도 결코 없는데 무엇을 보고 저렇게 단정적인 말을 하는 것일까. 고개가 갸우뚱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 때 같이 자리한 한 장로님이 애석하다는 눈초리로 선교사님 백팩(등에 메는 가방)을 가리키는 것이었다. 거기엔 노란 세월호 리본이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지난 4월 16일, 약속이 있어 광화문 교보문고에 갔다고 한다. 마침 광화문 광장에 세월호 2주기 행사가 있어 들렸는데, 행사 관계자가 노란 리본을 하나 백팩에 달아 주었다. 세월호 사건에 대해 어린 학생들이 펴보지도 못하고 세상을 떴구나 하고 연민의 마음을 갖고 있던 차에 리본을 선물로 주니 고맙기조차 했다. 그것을 깜박하고 그 교회까지 달고 간 것이다.
 
선교사님이 내게 껄껄 웃으면서 말했다.
 
"목사님, 노란 리본 때와 장소를 가려 달고 다니세요. 여차하면 종북으로 몰립니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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