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19-04-19(금)

많은 설화가 전해 지는 넉넉하고 포근한 절

신라에 불교가 공인되기도 전에 그 터전을 닦은 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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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17.09.18 0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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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봄, 여름, 가을 사계가 아름다운 절, 아도화상의 전설 등 수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는 넉넉하고 포근한 절 직지사가 있다. 직지사를 시간을 가지고 둘러보다보면 설화를 뒷받침 해주는 유물들을 어렵지 않게 발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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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에 의하면 아도화상이 선산의 도리사를 짓고 나서 손을 들어 황악산을 향해 멀리 서쪽의 산 하나를 곧게(直) 가리키며(指) ‘저 산 아래도 좋은 절터가 있다’고 하였으며, 그 아래 터를 닦아 절을 지어 직지사가 이름이 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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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도화상이 이 절을 창건한 해가 신라 눌지왕 2년, 서기 418년이라고 하여 직지사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큰 절인 해인사나 통도사, 송광사보다도 훨씬 먼저 세워지고 신라에 불교가 공인되기도 전에 그 터전을 닦은 절로 알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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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지사 정문이 매표소를 지나 양쪽으로 잘 자란 수목이 품어 내는 신선한 공기를 마시며 걸어 오르다 보면 일주문·대양문·금강문·천왕문을 차례로 만난다. 금강문에는 금강역사가 불법을 수호하기 위하여 무술 동작 자세를 취하며 무서운 표정을 하고 있다. 제석천을 섬기며 불법을 수호한다는 사천왕상이 있는 천왕문을 통과하면 만세루가 눈에 들어오며 오른쪽 옆 시원하게 솟는 샘물과 거북상이 눈에 보인다. 잠시 목을 축이고 만세루를 지나 대웅전 마당에 서면 좌우 양쪽에 탑이 보인다. 탑 앞 안내판에 아래와 같이 쓰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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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경 도천사지 동.서 삼층석탑

이 두 탑은 통일신라 말기(9세기)의 석탑이다. 비로전 앞 삼층석탑과 함께 원래는 경북 문경군 산북면 서중리의 옛 절터에 쓰러져 있던 것인데, 1974년 이곳으로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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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탑들은 대체로 통일신라 삼층석탑의 양식을 갖추고 있다. 그러나 일반적인 삼층석탑에서 보이는 이중기단이 아니라 단층기단인 것이 특이하다. 기단에는 면마다 안기둥과 귀기둥을 돋을새김 하였을 뿐 다른 장식이 없다. 탑신부는 몸돌과 지붕돌을 각기 하나의 돌로 만들었는데, 몸돌에는 다른 장식이 없이 귀기둥만 돋을새김 하였다. 지붕돌에는 수평을 이룬 처마선 아래로1층부터 차례로 5.5.4단의 처마받침을 두었으며, 1층 지붕돌에는 추녀 끝마다 풍경을 달았던 구멍이 뚫려 있다. 상륜부는 1976년 추정 복원한 것이다. 이 탑들은 단층기단이며 1층 몸돌이 2.3층 몸돌에 비해 훨씬 높은데다 폭보다 높이가 한층 커서 안정감보다는 상승감이 강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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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웅전에는 조선 후기 불화의 대표작으로 보물 670호로 지정되었다는 대웅전 삼존불탱화가 있다. 안내 표지판에는 아래와 같이 쓰여 있다.

‘직지사 대웅전 삼존불탱화

경북 김천시 대항면 직지사길 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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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웅전 수미단 위에는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동쪽에 약사불과 서쪽에 아미타불이 모셔져 있다. 불상 뒷벽에는 각 부처들의 설법 장면을 그린 석가모니후불탱, 약사후불탱, 아미타후불탱 등 3폭의 불화가 걸려 있다. 비단 바탕에 그린 이 불화들은 모두 길이 6m가 넘는 거작으로, 영조 20년(1744)에 직지사의 세관스님을 비롯한 16명의 화승들이 그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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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폭마다 여래를 중심으로 보살.나한.천왕.신장 등을 배치하였고, 채색은 적색.녹색.황색을 주조색으로 설채하였다. 짜임새 있는 구도, 각 존상 표현에 보이는 뛰어난 묘사력, 차분한 색조와 조화로운 배색, 화려하고 섬세한 세부 표현 등이 어우러져 장엄한 불교회화의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직지사 삼존불탱화는 작품성과 규모에 있어 조선후기 불화를 대표하는 우수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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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웅전 앞에는 탑과 함께 포대화상이 자리 잡고 있으며, 어려운 이웃에게 전달 될 현재 복 씨앗 기금 모금이 한창이다. 대웅전 우측에 성좌전, 감응전이 있어 대웅전을 참배한 이들의 발길이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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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웅전 좌측으로 관음전, 사명각, 응진전, 명부전 등 전각이 줄지어 세워져 있다. 전각의 배치가 끝나고 돌아나가는 지점에 직지사 중심이며, 천불전으로 불리는 비로전이 삼층석탑을 품고 있으며, 약사전이 옆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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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명대사는 호국승으로 잘 알려져 있으며, 직지사 주지를 지낸 승려이다. 사명각은 사명대사 영정을 모신 전각으로 안내 표지판은 아래와 같이 쓰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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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명각은 사명대사의 진영을 봉안하여 대사의 자취를 기리는 건물로서 조선 정조 11년(1787)에 창건되었다. 현재의 건물은 1975년 중창한 것이다. 사명 유정(1544~1610)은 조선 중기의 승려이자 승병장으로 알려져 있다. 스님의 법명은 유정, 호은 송운, 사명이고 시호는 자통홍제존자이다. 명종 15년(1560) 이곳 직지사에서 신묵화상을 은사로 승려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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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가 후에 직지사의 주지를 지냈으며, 묘향산 보현사의 서산대사를 찾아가서 참선, 수행하여 진리를 탐구하였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승병장으로 활약하였으며, 전쟁 후에는 강화사절로 일본에 건너가 잡혀간 포로 3,500여명을 귀환시키는 등 호국애민을 몸소 실천하였다. 광해군 2년(1610) 67세를 일기로 가야산 해인사에서 입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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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명각을 지나면 응진전을 만나게 되는데 안내 표지판에는 아래와 같이 쓰여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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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진전

응진전에는 석가모니불과 미륵보살, 제화갈라보살로 이루어진 삼존상을 봉안하고, 삼존상의 좌우에는 16분의 아라한을 모셨다. 아라한은 줄여서 흔히 나한이라고도 하는데, 한자어로는 응진 또는 응공이라고 한다. 이 말에는 '중생들의 공양을 받을 만한 성자' 라는 뜻이 담겨 있다. 아라한은 석가모니불의 제자로서 그의 가르침을 듣고 깨달음을 이룬 수행자들이다. 이들은 부처님의 뜻에 따라 각각의 신통력으로 중생을 제도하고 불법을 수호하는 역할을 한다. 이 건물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규모이며, 겹쳐마 맞배지붕 양식이다. 고려 태조 14년(931) 능여대사가 창건하였고,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을 효종 7년(1656) 관음전으로 중건하였다가 응진전으로 개액하였다. 1971년 중수하여 현재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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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진전과 나란히 명부전이 보이는데 안내 표지판에는 아래와 같이 안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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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부전

명부전은 지장보살과 시왕 및 그들이 거느리는 권속들을 모신 전각이다. 지장보살은 지옥 중생조차 모두 성불한 뒤에야 자신도 부처가 되겠다고 맹세한 자비의 보살이며, 시왕은 살아생전 인간의 죄업을 심판한다는 저승의 재판관 열분이다. 명부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 규모이며, 겹처마 팔작지붕 다포양식 건물이다. 내부 기둥 4개와 외부 기둥 12개가 그리는 평면이 모두 정사각을 이루는 특징과 단단한 짜임새가 돋보이는 건물이다. 고려태조 14년(931) 능여대사가 처음 세웠고,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을 현존 9년(1668) 팔상전으로 중건하였으며, 그뒤 명부전으로 개액하였다. 1971년 중수하여 현재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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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분의 부처님을 모신 비로전 앞에는 삼층석탑이 보이는데 안내 표지판은 아래와 같이 안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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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경 도천사지 삼층석탑

이 석탑은 통일신라 말기(9세기)의 석탑이다. 대웅전 앞에 서 있는 2기의 삼층석탑과 함께 문경군 산북면 서중리 옛 절터에 있던 3기의 석탑 중 하나이다. 1974년 이곳으로 옮겨왔으며, 1976년 상륜부를 추정 복원하였다. 이 탑은 대웅전 앞 삼층석탑과 크기나 양식, 세부가 모두 같다. 이렇게 모든 면에서 동일한 3기의 석탑이 한 곳에 서 있는 경우는 그밖의 예가 남아 있지 않아서 매우 특별한 경우에 속한다. 또한 이 탑은 삼층석탑이면서 이중기간이 아닌 단층기단을 지니고 있는데, 이러한 예들이 문경.상주.선산지역에 집중적으로 분표하는 것으로 보아 이 지방의 특색으로 이해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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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전 옆 약사전을 지나 따라 내려 오다보면 설법전과 마주 보고 있는 청풍료는 직지성보박물관이며, 1996년에 문을 연 직지성보박물관은 대한불교조계종 제8교구 본사인 직지사와 그 관할 아래 있는 김천.상주.구미. 문경.예천 등 경북 북부지역 소재 60여 사찰에 전해오는 불교문화재를 보존.관리.전시.연구하는 불교전문 박물관이다. 박물관에는 국보 제208호인 도리사 금동육각사리함, 보물 제1141호 예천 한천사 금동자물쇠. 보물 제11-2호 문경 김룡사 동종 등을 비롯한 9점의 국가지정문화재, 4점의 지방문화재를 포함하여 불교조각.불교회화.불교공예 작품 및 각종 와전, 금석문 탑본 자료 등 5,700여 점의 유물이 소장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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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해설사가 직지사 창건에서부터 중창 및 면면히 이어져 내려오게 된 우여곡절을 전해 내려오는 설화로 흥미롭게 이야기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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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선덕여왕 14년(645) 자장율사에 의해서, 그리고 경순왕 4년(930)에는 천묵대사에 의해서 한 차례씩 중창을 거친 직지사는 이곳에 머물렀던 능여대사가 고려 태조에게 도움을 준 보답으로 태조 19년(936) 그 사세를 크게 키우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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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경애왕 4년(927) 견훤이 서라벌을 함락하고 경애왕을 살해하자 이를 구하러 갔던 왕건은 오히려 팔공산싸움에서 견훤에게 크게 패하고 겨우 목숨을 건져 퇴각하고 있었다. 직지사 근처에 당도한 왕건은 직지사에 사람을 보내 묘책을 물었다. 능여대사는 하룻밤 사이에 삼은 짚신 2천 켤레를 왕건에게 전하며, 말띠 해가 되면 큰일이 이루어지리라고 예언했다. 그 짚신들이 어떻게 쓰였는지는 모르나 아무튼 왕건은 그의 도움으로 곤경에서 벗어났고, 예언대로 말띠 해 934년부터 후백제를 제압하기 시작해서 통일을 이룰 수 있었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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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에 줄곧 큰 사세를 유지하던 직지사가 흔들리기 시작한 것은 조선시대부터다. 초기에는 정종의 태를 묻은 태봉이 대웅전의 뒷봉우리에 모셔지는 인연으로 그럭저럭 예전의 규모를 지탱해나갔지만 임진왜란은 이 유서 깊은 절에 결정적 타격을 가했다. 더욱이 이곳은 임진왜란 때 많은 공을 세웠던 사명대사가 머리를 깎고 출가한 사찰이라는 이유로 왜병들의 혹독한 보복을 받았다. 대웅전 앞에 있던 오층 목탑을 비롯한 40동의 건물이 불타고 전해져오던 모든 유물들이 유실되었으며 오직 일주문·사천왕문·비로전만이 남은 폐허로 변했다. 직지사 중창의 노력의 결과 대웅전 석탑과 비로전 앞 삼층석탑 등이 문경 도천사터에서 옮겨오는 등 노력을 하여 현재 모습을 갖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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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탑을 거느리고 묵중하게 들어선 대웅전은 직지사가 고찰임을 내보이는 거의 유일한 건물이자 모두들 커지고 넓어진 절 안에서도 여전히 위풍을 잃지 않고 있는 법당이다. 지대석 위에 검박하게 다듬은 넓은 면석을 세운 뒤 그 위에 갑석을 올린 축대, 정자살과 빗살로 꾸민 문짝 등이 수수한 건물이다. 한 가지 악센트가 있다면 지붕 끝 수막새를 고정시키느라 생긴 못 구멍을 가리기 위해 올려놓은 연봉으로 마치 소라껍데기를 나란히 엎어놓은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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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후 선조 35년(1602)에 새로 지은 집으로, 영조 11년(1735)에 중건하여 오늘에 이른다. 정면 5칸 측면 3칸의 겹처마 팔작지붕) 다포집이다. 법당을 새로 지을 때쯤 그려진 것으로 보이는 벽화들이나 조각이 속되지 않은 수미단)도 눈여겨볼 만하고, 삼존불 뒤에 길게 걸린 후불탱화는 한참 동안 고개를 젖히고라도 음미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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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전 천불상은 고려 초 능여대사가 비로전을 지을 때 속리산의 경잠스님을 시켜 만들었다고 전한다. 법당 하나 가득 앉아 있는 불상들 속에 고추를 내놓은 탄생불이 가운데 서 있다. 법당에 들어설 때 이 불상을 가장 먼저 보게 되면 아들을 낳는다는 말이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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